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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01:00

기억의 미스터리

조회 수 169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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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미스터리 뇌가 없어도 기억이 가능하다?

얼빠진 사람한테 ‘뇌는 장식이냐?’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표현상의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정신이 또렷하지 못한 이유를 옛사람들은 심신을 다스리는 얼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본 반면, 현대인들은 뇌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인슈타인이 죽었을 때 천재성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뇌를 꺼내 연구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먼 미래에는 천재성의 흔적을 뇌에서 찾는 일이 가능해질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조상들이 혜안을 가졌던 것일 수 있다.

과학의 초창기에는 옛사람들을 무조건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의학서에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을 식빵(!)으로 치료하는 법이 나온다. 처음엔 미개인들의 허튼 소리라고 조롱하는 분위기였지만, 곰팡이의 일종인 페니실린이 발견된 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치료법이었음을 알게 됐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과학은 점차 고대인들의 지혜가 녹록하지 않았음을 재발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뇌에 관한 연구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뇌가 없는 수학 우등생

영국 셰필드 대학의 소아과 교수인 존 로버(John Lorber, 1915~1996)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학생의 뇌를 스캔해보고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개골 속에 마땅히 있어야 할 뇌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작 1밀리미터의 얇은 막이 두개골 안쪽에 깔려 있을 뿐, 나머지는 뇌 척수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극도로 심한 형태의 뇌수종이었다. 놀랍게도 이 학생은 아무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아이큐 126의 수학 우등생이었다. 이 학생이 병원을 찾은 건 머리가 일반인들에 비해 크다는 외관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마침 셰필드 대학 병원엔 뇌수종 환자들이 많았다. 로버는 수백 명에 달하는 환자들의 뇌 사진을 600장이나 찍어가며 연구를 했다. 놀랍게도 뇌의 95%가 비어 있는 환자가 전체의 10%에 달했다. 그중 절반가량이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IQ도 100이 넘었다.

 
brain02.jpg

일반적인 뇌수종 환자의 뇌 사진. 검은 색이 비어 있는 부분임.

<출처: (cc) Lucien Monfils at en.wikipedia.org>


이 사실은 1980년 사이언스지에 “당신의 뇌는 정말로 필요한가 Is Your Brain Really Necessary?”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학자들은 로버가 사진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반박을 했다. 그러나 영국의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패트릭 월(Patrick David Wall, 1925~2001)은 이런 사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며, 단지 주류학설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등한시되었을 뿐이라고 옹호를 했다.1)

로버가 발견한 사실은 그뿐이 아니었다. 뇌수종 환자들 중엔 한쪽 뇌에만 이상이 있는 사람이 50명도 넘었다. 의학 이론대로라면 반대쪽 몸에 경직이나 마비가 와야 마땅한데,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뇌의 한 쪽이 거의 비어 있는데도 그 쪽 몸에 마비가 온 환자도 있었다.


심장도 기억을 한다

인간의 모든 의식과 정신 활동이 뇌에서 비롯된다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또 다른 예가 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뒤 기질이나 습성이 변한 사람들이다.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식 수술이 처음 성공한 이래,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는데2) 이중의 일부가 수술 뒤 이상한 체험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무용수였던 클레어 실비아(Claire Sylvia)가 1997년에 자신의 체험을 담은 책 <심장의 교환 A Change of Heart>을 낸 것이 계기가 되어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실비아는 1988년에 심장과 폐의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취향과 습성의 당혹스러운 변화를 겪었다. 남자 같은 행동이나 걸음걸이가 자기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 나왔고, 프라이드 치킨이나 맥주처럼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음식을 탐하게 된 것이다. 차분하던 성격도 급하고 공격적으로 변한데다, 팀 엘(Tim L.)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에 관한 꿈을 되풀이해서 꾸게 됐다.

실비아는 자신에게 장기를 기증한 사람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18세의 청년이고, 메인 주에 살고 있었다는 정도의 정보만을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장기 기증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단서를 토대로 메인 주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의 부고 기사를 뒤졌다. 결국 기증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는데 그 청년의 이름이 바로 팀 엘이었다. 수소문 끝에 유가족을 만난 실비아는 자신의 변한 습성이 모두 팀 엘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3)

이 책에 대한 과학계의 반응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또 이식자가 기증자에 대해 어쩌다 들은 정보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든가, 면역 억제제의 부작용에 불과하다는 등의 주장이 있었으나 그런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brain03.jpg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페어솔 박사가 쓴 [심장의 코드 The Heart's Code] 표지.


실비아가 책을 쓸 때 자문을 의뢰했던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페어솔(Paul Pearsall, 1942~2007)이 이듬해에 비슷한 사례 73건을 모아 <심장의 코드 The Heart's Code>란 책을 낸다. 페어솔 자신이 골수이식을 받은 터라 이 문제에 열린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사례는 살해된 10세 소녀의 심장을 이식받은 8세 소녀의 이야기다. 이 소녀는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비슷한 또래의 낯선 소녀가 살해당하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똑같은 악몽이 반복되자 나중엔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는데, 담당 의사가 오랜 상담 끝에 소녀의 악몽이 실제 사건의 기억이란 결론을 내리고 경찰에 신고해 범인을 잡게 됐다. 이 소녀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나 복장, 살해 장소와 시간, 살해에 쓰였던 무기, 죽기 직전 소녀가 했던 말 등이 사실과 정확히 일치함이 나중에 가서 밝혀졌다.4)

페어솔은 1999년에 애리조나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게리 슈워츠(Gary Schwartz), 린다 러섹(Linda Russek) 등과 함께 이 현상을 공동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5) 그중 한 사례를 보자. 다섯 살의 대릴이란 사내 아이가 심장을 이식받았는데, 기증자는 파워 레인저라는 장난감을 붙잡으려다 창문에서 떨어져 숨진 세 살배기 사내 아이 티미였다. 대릴은 수술을 받은 뒤부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어린이의 경우 이렇게 의인화를 하는 사례들이 있다)에게 티미란 이름을 붙여줬어요. 그 아이는 아주 작고 어려요. 제 나이의 절반 밖에 안돼요. 티미는 높은 데서 떨어져 다쳤어요. 그리고 저처럼 파워 레인저를 좋아해요.”

다음은 대릴의 아버지의 증언이다. “대릴은 기증자의 이름이나 나이를 몰랐어요. 우리 부부도 몰랐으니까요. 우리는 그 아이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도, 그 아이가 몇 살이었는지도 최근에야 알았어요. 지금 보니 대릴이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셈이네요. 이름을 맞춘 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 아이의 원래 이름은 토마스거든요. 가족들이 그냥 티미라고 불렀던 거죠.” 다음은 대릴의 어머니의 증언. “대릴이 파워 레인저를 정말 좋아했는데 수술을 받고부터는 손도 대지 않으려고 했어요.”

또 다른 사례를 보자. 47세의 백인 노동자가 심장을 이식받았고, 기증자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숨진 17세의 흑인 청년이었다. 다음은 기증자의 어머니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제 아들은 바이올린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어요. 총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애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끌어안고 죽었어요.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어 언젠가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하게 될 거라 생각했죠. 다른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늘 놀려대곤 했지만요.”

다음은 이식자의 말이다. “내가 받은 심장이 흑인의 것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식을 받은 뒤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미치도록 좋아요. 그전까진 클래식이라면 질색을 했는데 말이죠. 이게 심장 수술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빈민가에 사는 흑인이 클래식을 좋아했을 리가 없으니까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이식자 아내의 말. “클래식 때문에 미치겠어요. 전에는 남편이 그런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클래식만 틀어놓고 있네요. 흑인의 심장을 이식받았다면 랩이나 뭐 그런 걸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포기억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병원의 외과의사인 벤자민 분젤(Benjamin Bunzel) 박사는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47명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했다. 전체의 79%가 수술 후 성격의 변화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고, 15%는 변화가 있긴 했지만 심장이식이라는 위중한 사건 때문에 생긴 변화일 거라고 답했다. 6%는 새로운 심장 때문에 성격의 명백한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변화가 없었다고 말한 환자들은 새 심장이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분노를 터뜨리거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화제를 바꾸려 애쓰는 등, 방어기제를 동원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6)

과학에 위배되는 듯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심장이식자들도 성격 변화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경향을 보이며 의사나 가족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페어솔 박사에 의하면 신장이나 간을 이식받은 사람들도 비슷한 변화를 체험하는 경우가 있는데 심장이식보다는 일시적이며, 다른 요인들로도 설명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캐나다의 의학박사인 존 앤드류 아머(John Andrew Armour)는 심장에 작은 뇌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7) 심장은 자체적으로 약 4만 개의 뉴런(신경세포)을 포함한 신경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자율신경계를 통해 독립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brain04.jpg

골지(Golgi) 염색법으로 염색된 간질환자의 뉴런. 40배로 확대한 것이다.

<출처: (cc) MethoxyRoxy at en.wikipedia.org>


또 신경과학자인 캔디스 퍼트(Candace Pert, 1946~2013)에 따르면 뇌의 신경세포에서 분비되는 전달물질인 뉴로펩타이드가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흐르면서 신체의 각 부분과 소통을 한다고 한다.8) 뇌가 뉴로펩타이드를 통해 신체의 다른 기관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얘기다. 원래 뉴로펩타이드는 뇌에만 존재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었지만 심장을 비롯한 신체의 각 기관에서도 뒤늦게 발견되면서, 두뇌와 신체의 경계가 생각처럼 명확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기억은 신경세포에 저장되는 것일까?


기억의 장소를 찾으려는 노력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인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 1891~1976)는 1930년대에 간질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괴기영화에나 나올 법한 실험을 했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들은 의식이 깨어 있었지만 부분마취가 된 상태에서 두개골이 열려 있었다. 펜필드는 뇌수술을 하기 전에 전극으로 뇌의 이곳저곳을 찔러가며 환자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물었다. 간질이 어느 부위에서 생긴 것인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측두엽의 한 부위를 찌르자 환자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지나간 기억을 말했다. 그 부분을 다시 찌르면 환자는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이 실험은 인간의 의식이 뇌의 작용일 뿐이라는 믿음을 굳혀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제 뇌의 어떤 부분에 어떤 기억이 저장되는지를 알아낼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9)

기억의 저장소를 찾아내려는 본격적인 실험은 미국의 신경심리학자인 칼 래쉴리(Karl Lashley, 1890~1958)가 처음 시도했다. 이 실험은 무려 30년 넘게 지속된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래쉴리는 우선 쥐에게 관문을 통과해 먹이에 도착하는 법을 가르쳤다. 학습이 끝나면 두개골을 갈라 뇌의 특정 부위를 인두로 지진 다음 다시 봉합을 했다. 그러나 뇌의 일부가 파괴된 상태에서에도 쥐들은 배운 것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점점 더 많은 부위가 파괴됐지만, 쥐들은 절뚝거리면서도 배운 기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원숭이나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어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10) 래쉴리는 결국 기억이 뇌의 특정 부위에 저장된다는 가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11)

흥미로운 것은 간질 환자 실험을 한 펜필드도 훗날 기억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는 것이다.12) 펜필드의 실험은 매스컴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다. 그 실험에서 기억을 떠올린 환자는 전체의 8%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이 실제 사건의 기억인지, 환각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연구자들이 실험했을 때 재현이 되지도 못했다.13) 그러나 기억의 장소를 찾으려는 실험은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줄기차게 시도되었다.

brain05.jpg
펜필드가 뇌의 각 부위에 전기 자극을 하면서 얻은 반응을 표시하기 위해 붙인 번호표
<출처: http://neurophilosophy.wordpress.com>

1980년대에는 영국의 생물학자 스티븐 로즈(Steven Rose, 1938~ )가 병아리들에게 특정 색깔의 빛을 피하도록 훈련을 시켰다. 학습을 마친 병아리들의 두개골을 열어보니 왼쪽 뇌의 특정 지역 세포들이 훈련을 받지 않은 병아리들보다 성장해 있는 것이 관찰됐다. 그와 동료들은 마침내 기억의 저장소를 찾아냈다고 환호했지만, 뇌의 그 부분을 도려낸 뒤에도 병아리들은 훈련받은 대로 행동을 했다.14)


개별 영역이 아닌 연결망인가?

결국 뇌과학은 뉴런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특정 영역이 망가져도 다른 영역이 공백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뉴런이 서로 연결되어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 속에는 1000억 개의 뉴런이 있고 네트워크의 회선 수만 150조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어마어마한 연결망의 지도를 만들려는 야심찬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영국의 생물학자인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 1942~ )는 이러한 발상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최근에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행해진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들은 쥐의 귀 안에 있는 두 개의 작은 근육을 통제하는 15개의 뉴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적 연구를 했다. 이렇게 간단한 과정조차도 특정한 연결망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똑같은 쥐인데도 왼쪽 귀와 오른쪽 귀의 연결 패턴이 서로 달랐다.15)

그런가하면 기억의 연결망 가설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는 듯한 실험이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마사 바이스(Martha Weiss)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곤충의 애벌레는 번데기로 변태하면서 모든 조직이 완전히 재구성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방의 성체가 애벌레 때 학습한 것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바이스와 동료들은 애벌레에 아세트산에틸이라는 화학물질의 냄새를 맡게 함과 동시에 전기 자극을 가했다. 애벌레는 결국 아세트산에틸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게 됐다. 그런데 이 반응은 애벌레가 번데기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의 신경 시스템이 완전히 해체된 뒤에도 여전히 유지됐다.16)

brain06.jpg

물결 파동의 간섭 현상. 홀로그래피는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정보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술이다.

<출처: (cc) ESO/M. Alexander at en.wikipedia.org>


파동과 홀로그램

기억이 뇌의 특정 부분이나 연결망에 저장된다는 가정은 일견 당연해 보이면서도 나방 실험의 예에서처럼 석연찮은 면이 있다. 인간의 경우 기억은 수십 년간 보존이 되는데 나방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뇌의 신경 시스템도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오랫동안 기억이 유지되는 것일까? 결국 몇몇 과학자들은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들은 기억이 뉴런이나 시냅스에 국소적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홀로그램처럼 인체에 분포된 모든 뉴런이나 시냅스에 비국소적으로 저장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는 의식이 파동의 성질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정보의 저장이란 면에서 파동을 이용하는 것만큼 이상적인 방법도 드물다. 파동간섭 패턴을 이용할 경우, 미국 의회도서관의 모든 책에 담긴 정보를 각설탕 크기의 공간 속에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17)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신경외과 의사인 칼 프리브럼(Karl H. Pribram, 1919~ )도 이런 결론에 이른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60년대에 원숭이를 이용해 뇌와 지각의 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을 해 래쉴리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1970년대에는 고양이의 뇌에서 시신경을 몽땅 들어내도 시각 능력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프리브럼은 기억이 일종의 홀로그래피처럼 뇌 전체에 퍼져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은 지금까지 뇌과학자들을 괴롭혔던 여러 가지 연구 결과들(기억이 두뇌의 모든 곳-심지어 심장 같은 기관 등-에 퍼져 저장되고, 각 부분에 전체가 포함돼 있음을 암시하는)을 나름대로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18)

홀로노믹 뇌 이론(holonomic brain theory)이라 불리는 이 가설에 의하면 기억은 깊은 기억과 얕은 기억으로 나뉘는데, 얕은 기억의 흔적은 뇌의 특정한 신경 회로에 담기는 반면, 깊은 기억의 흔적은 암호화된 형태로 뇌의 모든 부분에 비국소적으로 각인된다. 프리브럼은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는 의식이 깊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비국소적으로 입력된 홀로그래피의 간섭 패턴을 분석하여 암호를 풀어냄으로써 원래의 정보를 읽어내는 것으로 추정한다.19)

프리브럼의 이 주장은 많은 반대에 부딪쳤는데, 가장 심한 공격을 한 사람은 인디애나 대학의 생물학자 폴 피치(Paul Pietsch)였다. 피치는 프리브럼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도롱뇽 실험을 했다. 만일 프리브럼이 옳다면 도롱뇽의 뇌 일부를 제거하거나 뒤섞어도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피치는 700회 이상의 실험에서 도롱뇽의 뇌를 꺼내 토막내고 뒤섞었다. 심지어 뇌를 소시지처럼 다져서 집어넣기도 했지만 도롱뇽은 의식을 회복하면 평상시대로 행동을 했다. 결국 피치는 프리브럼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20)

기억이 홀로그램 형태로 암호화되어 뇌에 저장된다는 가설은 아직 여러 가지 면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는 미완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론이 뇌의 기능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김성진 | 출판기획자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기획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머니 매트릭스]가, 역서로는 [어스바운드], [종교의 절정체험(출간 예정)]이 있다.
발행2014.12.18


주석
1
John Lorber. (1980) Is Your Brain Really Necessary?: Sience,Vol. 210:1232-1234

2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 약 3,500 명 정도가 심장이식 수술을 받는다. http://en.wikipedia.org

3
Sylvia, Claire. (1997). A Change of heart: a memoir. New York; Warner Books.

4
Pearsall, Paul. (1999). The Heart’s code: tapping the wisdom and power of our heart energy. New York; Broadway Books.

5
Pearsall, Paul., Schwartz, Gary., Russek, Linda. (1999). Changes in heart transplant recipients that parallel the personalities of their donors. Internal Medicine.2:65-72.

6
Bunzel, B., et al. (1992). Does changing the heart mean changing personality? A retrospective inquiry on 47 heart transplant patients. Quality of Life Research; Vol. 1: 251-6.

7
Armour, J.A., Ardell, J.L., eds. (1994). Neuro-cardi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8
Pert, Candace. (1997). Molecules of Emotion: why you feel the way you feel. New York; Scribner.

9

10
Boycott, B. B. (1965). Learning in the octopus. Scientific American, 212(3), p. 48.

11
Sheldrake, Rupert. (2012). The Science Delusion. Coronet. p.190.

12
Wolf, F. A. (1984), Star Wave. Macmillan, New York. p.175.

13
www.aistudy.com; dreamwalker.ncity.net

14
Sheldrake, Rupert. (2012). The Science Delusion. Coronet. pp.191-192.

15
Lu, J., Tapia, J.C., White, O.L., and Lichtman, J.W. (2009). The interscutularis muscle connectome. Public Library of Science Biology.e 1000032. doi:10.1371/journal.pbio.1000032

16
Blackiston, D.J., Casey, E.S., and Weiss, M.R. (2008). Retention of memory through metamorphosis: Can a moth remember what it learned as a caterpillar? PLoS ONE, 3 (3), e1736.

17
McTaggart, Lynne. (2001). The Field. Harper Colins Publishers. pp.85-86.

18
Pribram, Karl H. (1969). The Neurophysiology of Remembering. Scientific American Volume 220, Issue 1, 73-86. ; Pribram, Karl H. In Search of the Elusive Semiotic. in Bourne, Geoffrey(ed.) (2012) Progress in Ape Research, Elsevier, pp.57-74.

19
Pribram, K. H., & Meade, S. D. (1999). Conscious awareness: Processing in the synaptodendritic web. New Ideas in Psychology, 17(3), 205–214. doi
;Pribram, K. H. (1999). Quantum holography: Is it relevant to brain function? Information Sciences, 115(1–4), 97–102. doi 
;Pribram, Karl H. (2007). Holonomic brain theory. Scholarpedia, 2(5):2735.

20
Pietsch, Paul. (1981). Shufflebrain. New York: Houghton Mifflin.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75&contents_id=7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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