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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21:04
‘교육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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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겁난다.
한국의 교육은 철저하게 ‘교육을 위한 교육’이다. 자식을 해병대 캠프에 보낼 때처럼 ‘교육적’이라는 말만 붙이면 정당화된다.
지난번 한 지방에 강연을 갔을 때다.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온 학부모와 ‘체험 학습’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 학부모가 한숨을 푹 내쉬며 제발 학교에서 아이가 뭘 좀 만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뭘 만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기특하고 좋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랑하기도 했다.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이도 신이 나서 학교에서 뭔가를 계속 만들어왔다. 어느 정도까지는 진열장을 사야 하나, 아니면 사진으로 일일이 기록해서 추억으로 남겨줘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점점 많아지면서 집안에 애물이 되었다. 아이는 부모가 좋아하니 계속 가지고 오는데 어디 둘 곳도 없고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그분은 심지어 아이가 학교에서 ‘쓰레기’만 만들어온다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아이에게 불쑥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넨 공부는 안 하고 만들기만 하니?”
ⓒ그림 박해성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 만들기 교육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들기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만드는 과정을 즐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리처드 세넷이 <장인>이라는 책에서 쓴 개념을 빌린다면, 만들기를 통해 ‘생각하는 손’을 키우는 것이 만들기 교육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며 과정이 손에 익도록 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만들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육에서 만들기는 ‘학교 교육이 머리만 쓰게 하고 손과 몸을 놀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도입되었음에도 여전히 손과 발을 놀리는 것 자체도 ‘공부’, 즉 머리를 쓰게 하는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만들기를 통해 학생들이 사물이나 원리에 대한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만들기 자체가 교육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처음에는 만들기 자체가 재미있더라도, 점점 자기가 만드는 것이 공부를 위한 수단이며 자기가 만든 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만들기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 한국의 교육은 철저하게 ‘교육(공부)을 위한 교육’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교육적’이라는 말만 붙으면 어떤 반교육적인 것도 정당화된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교육용이라는 이름으로 호랑이를 좁은 우리에 가둬 공공장소에 전시하기도 했다. 호랑이가 겪을 고통과 그 고통을 당연시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반교육적’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교육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게 만들기 위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만 신성시된다. 다른 모든 것은 공부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하다. 교육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폐기해도 무방한 것이 된다. 이런 ‘교육을 위한 교육’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당연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반교육적이다.
6월 교육감·교육위원 선거의 투표 기준
이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가장 겁나는 말이 ‘교육적’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붙여서 좋은 일이 생기는 걸 못 봤다. 자식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는 것도 ‘교육적’이라는 말만 붙으면 합리화된다. 그 과정이 얼마나 반교육적인가 하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해병대 캠프에 다녀와서 자식이 부모의 고마움을 절실히 깨닫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이며 어리광쟁이였는지를 깨달으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과정이며, 과정을 통해 배우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과정을 무시하고 수단시하고 그 과정에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과 존재들을 도구로 삼는 못된 습관만 들이게 한다.
이제 6월이면 광역단체마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내가 학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교육적’이라는 이름으로 또 무엇인가 반교육적인 것을 학교 안으로 들여오려는 사람들만은 절대 뽑지 말자는 것이다. ‘교육적’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만 안 뽑아도 그 첫걸음은 될 것이다.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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