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조회 수 2384 댓글 0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대학 가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유
지금 대학은 어떤 곳인가. 문화 권력이 될 수 있는 대학은 극소수이고, 기회비용 문제가 대학의 목줄을 죄고 있다. 대학은 공동화되었다.

얼마 전 한 지방의 강연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곧잘 공부를 했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 성적이 수직 낙하한 모양이었다. 근처의 대학에 들어갔는데 아들이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나오지를 않더란다. 군대를 다녀오면 좀 나을까 싶었는데 다녀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아들이 배관공을 하는 이웃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몇 달 뒤 아들은 대학을 그만 다니고 배관공이 되겠다고 했다. 일단 방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대견해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정말 아들이 대학을 안 다녀도 되겠느냐고 아버지가 내게 물어왔다. 왜 꼭 대학을 다니게 하고 싶은가를 아버지에게 되물었더니 아버지는 그래도 한국에서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하지 않겠느냐고 우울하게 대답했다.

성적이 최하위권인 일반계 고등학교의 김 아무개 선생은 자기 학교 출신 중에 대학을 마치는 학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에 진학한다. 입시철이 되면 이런 학교에서 원서를 아예 주고 간다. 원서비 같은 것도 없고 내신 중에서 한 학기 한 과목만 본다. 아무나 들어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대학 갈 생각이 없던 친구들도 분위기 타서 간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졸업하는 학생은 없다. 수업을 듣는 것도 몸에 배어 있지 않지만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결국 돈 낭비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선생님 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요”라며 휴학을 한 뒤 남학생들은 군대를 간단다. 휴학은 곧 자퇴다.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univ.jpg
ⓒ그림 박해성

성경이는 자발적 비진학자다. 주변의 친척 형·누나들을 보면서 대학에 왜 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던 성경은 일찌감치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신 그 돈과 정성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쏟아 부었다. 대학의 가치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의외로 성경이는 나중에는 대학을 가려 한다고 말했다. 다소 의외여서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보다는 좀 더 심화된 공부를 하고 싶고, 그런 공부를 하려면 역시 언젠가는 대학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이 세 사례는 한국의 대학이 처한 위치와 위상이 어디쯤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첫 번째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처럼 대학은 사회적·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대학을 나와야만 사회적·문화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과 같은 학벌 사회에서 대학은 여전히 강력한 ‘문화 권력’이다.

두 번째 김 선생의 이야기에서는 경제적 측면에서 대학은 거의 껍데기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학 수는 지나치게 많고 자본은 대학을 졸업한 노동력을 그만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학이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졸업장뿐이지만 어떤 대학들은 기회비용 측면에서 계산해보면 적자다.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

마지막으로 성경이가 말하는 대학은 말 그대로 ‘공부하는 곳’이다. 아무리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나면 사람들은 기술을 넘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원리’에 대해 궁금해한다. 좀 더 나은 기술을 갖기 위해서라도 이때부터 필요한 것은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원리를 이해하고 그 원리를 자신이 응용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자유로워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자유란 ‘법칙의 바깥’이 아니라 ‘법칙의 활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경이가 말하는 대학이란 바로 이런 원리를 배우고 그 원리를 통해 자유로워지는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은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 자체가 권력일 수 있었지만 이제 문화 권력이 될 수 있는 대학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기회비용의 문제는 대학의 목줄을 죄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공부하는 곳으로서의 대학은 공동화되었다. 나는 성경이에게 언젠가는 대학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출처] http://www.sisain.kr/19460

?

  1.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면 놀랍게 변하는 디지털 스크린 옥외광고

  2. 대학가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유

  3. 출생연도(出生年度)에 따른 간지(干支) : 1801년~2100년

  4. 부모나래. 아이와 놀아줄 때 어떤 부모입니까?

  5. 지능과 재능을 칭찬하면 안된다.

  6. 박사학위가 갖는 의미

  7. 최고의 개혁

  8. 크게 될 놈일세..

  9.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

  10. 구글 이미지 검색

  11. 기발한 명함과 카피

  12. 대한민국 일처리 방식

Board Pagination Prev 1 ...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 81 Next
/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