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획서는 무엇을까? 좋은 기획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기획자 커뮤니티를 가면 좋은 기획서를 쓰는방법에 대해서 많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기획자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좋은 기획서인지? 어떻게 해야 좋은 기획서를 쓸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나는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를 혼란스럽게 하는 기획서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의견을 한문장으로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좋은 기획서는 '형용사' 가 없다."
사실이다. '형용사' 는 실무 개발자를 혼동으로 빠뜨리고, 수많은 똥개훈련으로 개발자를 지치게 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프로그래머에게 전달되는 기획서는 형용사를 하나도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설명을 왈가왈부 하기 보다는 "나쁜 기획서" 를 하나 만들어서 보여주는것이 좋을것이다.
# 스킬 기획서
스킬명 : 썬더 스트라이크
사용클래스 : 전사
스킬설명 : 캐릭터가 기를 모은뒤에, 다수 캐릭터에게 강력한 공격을 한다. 스킬에 피격당한 캐릭터들은 약간 느려진다.
애니메이션 : 캐릭터가 기를 모으는 동작을 한 뒤에, 적당한 높이로 뛰어올라서 땅에 검을 꼽는다, 캐릭터주변으로 충격파가 펼쳐져 나가면서 주변 캐릭터에게 데미지를 준다.
이펙트 : 기를모을때, 검신에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하늘색 오라가 뭉친다. 스킬시전하는 캐릭터에 밝은 광원효과가 생긴다. 캐릭터가 점프를 하면 오라의 회오리가 캐릭터 주변을 감싸면서 하늘로 솟구친다. 검을 땅에 꼽을때 에너지 충격파가 주변으로 뿜어져 나가는 이펙트가 방출된다.
타격이펙트 : 스킬에 피격당한 몬스터의 땅에서 쇠사슬이 솟아오르며, 몬스터의 두 다리를 쇠사슬이 묶는 이펙트가 나타난다.
MMORPG 를 개발해본 경험이 있다면, 슬슬 뭐가 잘못된것인지 파악될것이다. 이제 하나씩 하나씩 뭐가 잘못되었는지 분해해보자.
캐릭터가 기를 모은뒤에, 다수 캐릭터에게 강력한 공격을 한다.
-> 다수 캐릭터라는 모호한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 4명, 5명, 6명 혹은 타일 4장범위 혹은 반지름 60포인트 라든지 구체적인 숫자를 적어야 한다. 또한 강력한 공격이라는 표현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100데미지, 200데미지, 300데미지 혹은 데미지공식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스킬에 피격당한 캐릭터들은 약간 느려진다.
-> 약간느려진다고 하면 얼마만큼 느려지는지 알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0%, 20%, 30% 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적어줘야 한다.
캐릭터가 기를 모으는 동작을 한 뒤에, 적당한 높이로 뛰어올라서 땅에 검을 꼽는다, 캐릭터주변으로 충격파가 펼쳐져 나가면서 주변 캐릭터에게 데미지를 준다.
-> 애니메이션 관련부분은 글로 장황하게 적는것보다, 졸라맨 사컷만화라도 직접 스케치를 하는편이 좋다. 혹은 아이폰4S 처럼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이 있다면 자신이 직접 스킬모션을 연출해서, 녹화하여 애니메이터에게 넘겨야, 똥개훈련을 피할수 있다. 하다못해 자신이 원하는 가장 비슷한 모션을 보여주는 타사게임의 스킬시전장면을 녹화하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아이폰4S 혹은 그정도 급의 스마트폰이 있다면 녹화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기를모을때, 검신에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하늘색 오라가 뭉친다. 스킬시전하는 캐릭터에 밝은 광원효과가 생긴다. 캐릭터가 점프를 하면 오라의 회오리가 캐릭터 주변을 감싸면서 하늘로 솟구친다. 검을 땅에 꼽을때 에너지 충격파가 주변으로 뿜어져 나가는 이펙트가 방출된다.
->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하늘색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런 색상을 알아차릴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색상은 RGBA(0,0,255,255) 처럼 RGBA 값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색상을 절대 형용사로 언급해서는 안된다.
-> 캐릭터에 밝은 광원효과가 생긴다라고 적혀 있지만, 글로우 효과인지, 동그란 빌보드를 전면에 배치하는건지 알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장 비슷한 타사게임 스샷을 첨부하거나, 기본적인 스케치를 해서 제공해야 한다.
-> 에너지 충격파가 주변으로 방출된다 라고 적혀져 있지만, 역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수 없다. 스타2 의 EMP 터지는건지 핵탄투가 터지는건지 스샷이나, 낙서수준의 스케치라도 있어야 한다.
2012/3/21 추가 :
기획자가 RGBA 값을 찍어줘야 한다는 글이 논란이 많이 되고 있다. 보통 그래픽작업은 아티스트가 하는경우가 많지만 애매한 경우도 많이 있다. 코드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UI 나 이펙트의 경우 코드로 그래픽이 구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때는 RGBA 색상값을 찍어줘야 한다.
인첸트가 많이 될수록 짙어지는 검기 이펙트나, HP 감소량에 비례해서 색이 짙어지는 공격효과, 특정 속성값에 비례해서 크기가 커진다든지 하는것들은 디자이너가 미리 작업할수 없고, 코드로 연동해야 하는데, 이럴경우 프로그래머가 코드상에서 색상작업을 하는것이기 때문에 RGBA 값이 찍어져 있으면, 의사소통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그래픽 리소스의 경우 기획자가 어느정도로 스케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볼 일이다.
(몸재주도 없고, 그림그리는 능력도 부족하다면 최소한 인터넷검색은 열심히 해서, 자료 스샷이라도 첨부하자.)
스킬에 피격당한 몬스터의 땅에서 쇠사슬이 솟아오르며, 몬스터의 두 다리를 쇠사슬이 묶는 이펙트가 나타난다.
-> 타격이펙트를 제작할때는 시전자 이펙트보다 훨씬 조심해야 한다. 몬스터의 두 다리를 쇠사슬로 묶는다고 되어 있지만, 뱀처럼 다리가 없는 몬스터도 있고, 거미처럼 다리가 여러개인 몬스터가 있을수도 있다. 이런경우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 스킬 시전자는 소수이지만, 스킬 피격자는 다수이다. 따라서 피격이펙트는 가급적이면 뭉뚱그려서 단순하게 하는편이 좋다.
이쯤되면 왜 기획서에 '형용사' 를 사용해서는 안되는지 슬슬 알수 있을것이다. 기획팀 내부에서 검토단계에 있는 문서라면 모를까, 프로그래머에게 전달되는 단계까지 기획서가 작성되었다면 기획서에는 모든 형용사가 제거되고, 구체적인 숫자와 그림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기획서에 애매모호한 표현이 없어야 한다는건 기획자 지망생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게임개발을 하면 경력 10년차 기획팀장조차 무의식적으로 문장에 '형용사' 를 범벅을 해서, 기획서를 망치는 일이 수두룩하다. 왜 그럴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몇가지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획자가 시나리오 부분 출신일때..
분명 기획서는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은 소설이지만 기획서는 글로 작성된 '설계도면' 에 가깝다. 신입때부터 시스템기획이나 엑셀작업을 주력으로 해왔던 기획자라면 상관없지만, 시나리오/세계관 부분에서 주로 일해왔던 기획자는 시스템기획서조차 시나리오설정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획서는 시나리오 설정집과는 분명 다르다. 시나리오 설정집은 문학이지만 기획서는 공학(엔지니어링) 이다.
2. 자기자신조차 자신이 뭘 기획하는지 모를 때..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하늘색을 스킬이펙트로 넣고 싶은데, 그게 무슨색상인지, 자기 자신조차 몰라서, 스케치도 못하고, RGBA 색상값을 찍지도 못하고, 그저 디자이너가 맥스로 작업하고, 프로그래머가 코딩해서 결과물이 나오면, 결과물을 보고, "좀더 부드럽게 해야할것 같은데?" 혹은 "좀더 강렬한 느낌이 나야할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형태이다.
자신의 머리속에서 자신의 기획서를 시뮬레이션 해볼수 없어서,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가 똥개훈련 하는형태인데, 만약에 자신의 기획팀이 이런 형태로 개발한다면 CMA 계좌에 3개월치 생활비를 준비하기 바란다. 필시 월급이 밀릴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기획하는건 자기 머릿속에 정확한 스샷을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내용을 상대방에게 손실없이 전달해야 한다.
3. 시간이 부족할 때..
노력만으로 좋은 기획서를 쓸수는 없다. 좋은 기획서는 "시간" 이 필요하다. 머리속에 있는 이미지대로 "충격파 이펙트가 나간다" 라고 글을 쓰는건 1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충격파 이펙트가 나가는 이펙트에 대한 스케치를 한다고 해보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들어간다. 낙서수준의 그림을 그리는데도 대략 하루가 걸린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가장 가까운 스샷을 확보하는것 역시 엄청난 시간이 들어간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다.
1. '충격파 이펙트가 나간다' 라는 기획서를 읽고, 프로그래머는 비슷한 게임스샷이나 동영상을 요구한다.
2. 인터넷을 검색해보지만 좀처럼 비슷한 스샷이 안나온다.
3. 지인들에게 수소문을 해보니 EA 사의 XYZ 게임과 YYZ 게임의 스킬이펙트가 비슷하다는걸 알았다.
4. 총무팀에 게임2 카피 구매요청을 한다.
5. 총무부장이 그깟 스샷때문에 꼭 게임을 사야하나? 라고 말하면서 거부한다.
6. 스샷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토렌트에서 다운로드를 받는다.
7. 총무팀에서 기획팀 이모씨가 트래픽 유발하고 있다고 인터넷 끄라고 경고가 온다.
8. 결국 집에서 게임 2카피 다운로드 받아서, 회사에 인스톨한다. 하지만 이펙트가 안나온다.
9. 수소문해본결과 게임엔딩부분까지 가야 그 이펙트를 볼수 있다고 한다.
10. 이래저래 산넘어 산이다.
기획서에 스샷첨부하는게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내가 딱 잘라서 말하겠다. '어렵다' 그것도 '매우어렵다' 인터넷에서 자료가 잘 나오면 잘된것이지만 그렇지 않은경우도 많다. 자료조사라는게 쉬운게 아니다. 더군다나 시간압박에 시달리는경우에는 구체적인 자료를 첨부하기 보다는 글 한두문장으로 끝내고 싶은 압박을 많이 느끼는것이 사실이다.
4. 돈이 부족할때..
좋은 기획서를 쓰는데는 돈이들어간다. "뭐? 기획서 쓰는데 돈이 들어간다고?" 농담이 아니다. 사실이다. 와우를 분석한다고 하면 와우계정비가 있어야 한다. 캐쉬템 기획서를 쓸려면 캐쉬템을 10만원 이상 써봐야 제대로된 자료를 첨부할수 있다. 패키지게임 분석한다고 하면 패키지게임을 구입해야 한다. 이러한 자료조사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해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경우 난감해진다. 친구 와우계정 빌려서 조사하는것도 하루 이틀이고, 헝그리정신으로 맨주먹 자료조사도 하루 이틀이다. 결국 자린고비정신으로 만들수 있는 기획서는 부실한 기획서 뿐이다.
게임개발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중 하나가 "간단한 스케치를 그릴수 있는 기획자" 이다. 그래픽디자이너 수준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스케치라도 해줄수 있는 기획자가 필요하다는것이다. 하지만 기획자에게 포토샵과 와콤 타블렛을 사주는 게임개발사는 드물다. 스케치할줄 아는 기획자는 찾으면서도 장비구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기획자가 꼭 타블렛과 포토샵까지 필요하나?" 라는 반문이 나온다.
물론 기획자가 타블렛이나 포토샵이 있어도 좋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획자라고 해도 그림판과 마우스로 그린그림과 포토샵과 타블렛으로 그린그림은 상당한 퀄리티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저 "XXX 할수 있는 기획자 있어야되" 라고 말은 잘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개발도구 지급은 인색한것이 현실이다.
좋은 기획서를 쓰는데 몇백만원/몇천만원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10만원~20만원 정도는 돈이 들어간다.
결론
좋은 기획서는 형용사가 없다.
모든 형용사는 구체적인 숫자/스케치/스샷/동영상/도표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획자의 형용사를 이해할수 있는 프로그래머는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머 똥개훈련은 임금체불의 지름길이다.
형용사가 없는 기획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조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자료조사하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자료조사에는 돈이 들어간다. 떼돈은 아니더라도 10만원 ~ 20만원은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알면서도 기획서를 형용사로 범벅을 하는 실수를 한다.
[출처] http://blog.daum.net/gdocument/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