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신정변 (1170년)
<무신 정변의 주동자 정중부>
1170년 8월에 고려의 무신들이 보현원에서 들고일어난 정변이자 구테타.
당시 상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무신들이 일으켰기 때문에 정중부의 난 또는 무신의 난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경인년 거병이라고도 한다.
문신들이 대놓고 무신들을 호구 취급하면서 온갖 차별과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무신들의 분노게이지는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다.
의종 때에 이르러 상황이 최악이었는데 의종은 문신들과 마실 나가면서 허구헌 날 호위군인 금군을 대동하였고, 그 때마다 동원된 무신들은 굶어가면서 왕과 문신들의 주변을 지켜야 했다.
과거제도도 문신만 볼 수 있고 무신들은 아버지가 무신이면 자연스럽게 무신이 되었다. 등급이 같아도 문신과 무신은 차별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5품 이상의 문신에게는 세습할 수 있는 토지인 공음전이 부여되었으나 무신은 토지를 세습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젊은 문신들이 나이 많은 무신을 무시하기도 했는데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은 무신인 정중부의 수염을 태우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왕의 친위대의 우두머리격이었던 정중부의 수염을 보고 왕인 의종이 칭찬을 했고 이를 질투해서 수염을 태운 것이다. (김돈중은 내시이기 때문에 수염이 없었고 자신이 없는 멋진 수염을 정중부에게 있는 것이 싫었던 것)
그리고 나이 든 대장군 이소응이 수박 경기에 참여했다가 지쳐서 경기를 피하는데, 문신이 기거주 한뢰가 뛰어나와 이송응의 뺨을 때리자 이소응이 섬돌에 나가떨어져 다치게 되었다. 왕과 문신들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면서 이소응에게 욕을 했다.
고려시대의 종 3품은 무신이 오를 수 있는 2번째로 높은 품계인데다가, 당시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이소응은 당장 군문에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이었다.
현재로 치면 40대인 5급 공무원이 장성급인 군 원로를으 뺨을 때리고 조롱한 것과 같은 격이다. 무신들이 이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의종이 보현원에 도착하기 직전 이고와 이의방은 먼저 들어가 왕의 명이라 속이고 순검군의 병사들을 소집한다. 왕이 보현원의 문 안에 들어가자 수박 대회에서 웃었던 임종식과 이복기가 그 자리에서 살해 당했으니, 이것이 무신정변의 시작이었다.
개성에 입성한 무신들은 각 궁궐들을 장악하고 핵심 관료들을 모두 잡아 죽였으며 사병들을 풀어 문관의 관을 쓴 놈은 말단 관리라도 모조리 죽이라고 하였고 50여 명의 문관들이 살해 당한다.
이후 무신들은 의종을 궁궐로 돌아오게 하였는데 왕이 총애하던 내시부의 관원인 왕광취가 반격을 하려 했지만 이 사실이 누설되어 20여 명이 또 살해당했다.
의종과 그 가족에게 손을 대지 않던 정중부는 의종을 협박해서 군기감이 되었고, 정중부는 계속해서 직위를 높이는 일을 반복한다. 무신들은 의종을 신뢰하지 않아 그와 태자를 폐위시켜 추방하고 태자의 어린 아들을 살해한다.
무신들은 이후 의종의 동생이던 익양공 왕호를 새 왕으로 옹립한다. 명종은 역시나 허수아비일 뿐 실권 대부분은 정중부를 중심으로 한 무신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1172년에는 동북면 병마사였던 김보당이 다시 의종을 왕위에 옹립하고 무신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거제도에 있던 의종을 데려오려고 하였다. 이에 무신들은 장군 이의민에게 병력을 주어 보냈고 김보당은 안북도호부에 잡혀서 고문을 받고 처형되었다.
김보당의 난으로 결국 다른 문신들도 짐승 죽이듯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이의민은 의종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무신들이 집권한 후 자신들의 권력 투쟁이 시작되는데,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이로
이렇게 약 100년간 무신들이 고려의 집권 세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