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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 17:12

신에 대한 진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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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어느 대학교의 토론 수업 시간이었다. 그 수업의 강의를 맡은 교수는 대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중견 교수였는데, 워낙 성미가 고약하고 짓궂어서 학생들의 민감한 문제에도 곧잘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그날의 토론 주제는 신이었는데, 교수는 수업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교실에서 가장 앞에 앉은 학생을 지목했다. 그의 목걸이에는 쇠로 만든 작은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교수: 학생, 자네는 기독교인(Christian)이지. 맞는가?
학생: 네, 교수님.
교수: 그럼 자네는 하나님을 믿겠군?
학생: 물론이죠.
교수: 하나님은 선하신가?
학생: 그럼요.
교수: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학생: 네.
교수: 내 동생은 암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지만, 결국에는 암으로 죽고 말았다네. 대체로 사람들은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도와주려고 하지.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전능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네. 이런데도 하나님이 선하다는 말인가?



갑작스러운 교수의 공격에 학생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교수: 대답하질 못하는군. 그럼 다시 묻겠네, 학생. 하나님은 선한가?
학생: 네, 그렇습니다.
교수: 그렇다면 사탄은 선한가?
학생: 아니요.
교수: 그런데 사탄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학생: 하나님……이시죠…….

성경의 욥기에서는 천사를 가리켜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천주교(Catholic)에서는 천사를 '하느님이 창조한 영적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대목에서 보이듯 사탄이란 본래 천사 가운데 인간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존재였으며, 나중에는 타천사로서 선한 하나님에 반하는 악한 존재로 정의되었다. 결론적으로 사탄은 본래 천사이고,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이다.

교수: 그렇다네. 그럼 말해보게.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지?
학생: 네.
교수: 악은 모든 곳에 있다네. 맞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만들었지. 안 그런가?
학생: 그렇습니다.
교수: 그렇다면 악은 누가 만들었나?

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 세상에는 고통이나 부도덕, 증오, 추함과 같은 나쁜 것들이 존재하지. 안 그런가?
학생: 네, 교수님.
교수: 그럼 누가 이런 것들을 만들었나?

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 과학은 사람이 세상을 인지하는 데 있어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이라는 오감을 사용한다고 한다네. 그렇다면 학생, 자네는 하나님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는가?
학생: 아니요.
교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본 적은?
학생: 아니요.
교수: 그렇다면 하나님을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를 맡은 적도 없는가? 하나님을 그 어떤 감각으로도 직접 인지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인가?
학생: 아니요, 없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교수: 그런데도 아직 하나님을 믿는다고?
학생: 네.
교수: 허나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에 따라서, 과학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군. 자네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교수는 학생의 신앙 간증에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교수: 그래, 믿음이라. 과학에는 그게 없고 말이지?


II.

그러자 학생은 교수에게 항의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학생은 교수에게 바락바락 대들어서 논쟁에서 자신의 패배를 자인할 것인가? 순식간에 흥미진진해진 교실 안의 상황에 학우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학생에게로 모아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학생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했다.

학생: 교수님, 세상에는 뜨거움(heat)이라는 게 있지요?
교수: 그렇네.
학생: 그리고 차가움(cold)이라는 것도 있고 말입니다?
교수: 그래.
학생: 아닙니다, 교수님. 그런 건 없어요.

얼핏 비상식적인 학생의 언설에 강의실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학생: 교수님, 우리는 주위에서 상당히 뜨거움, 더 많이 뜨거움, 엄청나게 뜨거움, 무지막지하게 뜨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주 조금 뜨거움이라던가 뜨거움의 부재도 있지요. 하지만 이른바 '차가움'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하 273도에 해당하는 뜨거움의 부재 상태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이하로 만들 수는 없지요. 차가움이라는 게 실재하지 않는 겁니다. 차가움이라는 단어는 단지 뜨거움의 부재를 나타내는 말이지, 그것을 잴 순 없지요. 뜨거움은 에너지이지만, 차가움은 뜨거움의 반대가 아닙니다. 그저 뜨거움의 부재이지요.

강의실은 쥐죽은 듯 잠잠했다.

학생: 그럼 어둠은 어떤가요, 교수님. 어둠이라는 게 실재하나요?
교수: 그렇네. 어둠이 없다면 밤도 없지 않겠는가?
학생: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님. 어둠이라는 것도 역시 무엇인가의 부재지요. 우리는 아주 작은 빛, 보통의 빛, 눈부신 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오래도록 빛이 부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둠이라고 하는 겁니다. 안 그런가요? 어떤 실재로서의 어둠이라는 것은 없지요. 혹시 있다면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 수 있단 말인데, 그게 가능한가요?
교수: 그래서 요점이 뭔가, 학생?
학생: 교수님, 제 요점은 교수님의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교수: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한번 설명해 보겠나?
학생: 교수님께서는 이분법적인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산 것이 아니면 죽은 것이고, 선한 하나님이 아니면 악한 하나님이라는 논지이지요. 교수님께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유한하고, 우리가 측정 가능한 존재라고 보고 계십니다. 교수님, 과학은 생각이라는 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학은 전기와 자기를 말하지만, 그것이 목격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도 못하지요. 죽음을 생명의 반대로 보는 건 죽음이라는 게 어떠한 실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신 겁니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가 아닙니다. 단지 생명의 부재일 뿐이지요.

그래서 학생의 이 논지가 교수의 논리를 어떻게 반박한다는 것인가? 교실 안의 몇몇 학우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논지가 본론으로부터 너무 멀리 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학생은 잠시 말을 멈추고 화제를 전환시켰다.

학생: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가르치시지요?
교수: 그것이 자연 진화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면, 맞네. 그렇게 가르치지.
학생: 그럼 진화의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까?

교수는 학생의 논리가 성립되어 감을 보고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생: 아무도 진화의 과정을 목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입증하지도 못했으니, 교수님께서는 개인적인 견해를 가르치시는 것 아닙니까? 교수님께서는 과학자가 아니라 선동가이신가요?

다소 과격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학생의 발언에 교실이 웅성거렸다.

학생: 이 교실 안에서 교수님의 뇌를 보신 분이 있습니까?

교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 아니면 교수님의 뇌를 들어보신 분은 계신가요? 느끼신 분은요? 만지거나 냄새 맡아 보신 분은 없습니까……? 아무도 그런 적은 없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에 따라서, 과학은 교수님의 뇌가 없다고 말하는 셈이로군요. 교수님, 이렇게 되면 교수님의 강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교실은 다시 침묵했다. 교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학생을 응시했다.

교수: 자네가 그러는 것처럼 믿음을 가진다고 해야겠군.
학생: 바로 그겁니다, 교수님. 사람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믿음(faith)'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지요.

​III.
교수는 조금 놀랐다는 눈으로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교실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교수가 방금 손을 치켜든 남자에게 시선을 던지자, 따라서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남자는 후줄근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분노인지 탄식인지 모르게 빛나는 두 눈이 범상치 않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교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교수: 그래, 학생. 자네는 뭔가?
사티레브: 저는 사티레브(Satirev)라고 합니다. 이 대학의 졸업생이죠.
교수: 알겠네. 왜 손을 든 건가?
사티레브: 저 학생의 정신나간 논리와 거기에 순순히 감탄하고 있는 어떤 멍청한 분 때문에 이 교실을 나가고 싶어져서 말입니다.

자신을 사티레브라 한 남자의 말에 교수와 학생은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그가 자신들을 싸잡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교수: 자네의 항의는 나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저 학생에 대한 것인가?
사티레브: 저 학생이 무지몽매한 자라는 건 익히 알겠습니다만, 설마 교수님께서도 이런 식으로 놀아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학생: 제 말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사티레브: 차라리 문제가 없는 게 뭐냐고 묻는 게 더 낫겠군.

사티레브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사티레브: 자네는 전자기파와 신에 대해서 언급했지. 둘 모두 어떤 감각기관으로도 인지할 수 없지만, 둘 모두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이야. 그럼 자네는 어떻게 예시로 든 전자기파라는 것을 알고 논하는가? 자네는 전자기파도 '신앙'하는가? 성스러우신 퀄컴(Qualcomm)은 자네가 믿는 또 다른 신인가?
학생: 사람의 오감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그러나 실재하는 것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사티레브: 말장난이네. 우리 신체의 오감은 분명히 한계를 지니고 있지. 따라서 우리는 오감으로 느끼지 못하는 걸 인지할 수 없다네. 박쥐의 초음파라던가, 무지개의 자외선 따위가 그런 것이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말한 초음파라던가 자외선은 모두 신앙의 결과물이겠군. 아니 그런가?

학생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침묵했다.

사티레브: 인류는 오감으로 인지되지 않는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오고 있다네.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전파는 라디오의 회로를 거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바뀌지. 아하, 자네는 라디오 전파도 신앙하는가? 어느 채널을 신앙하는가?
교실 일각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티레브: 이밖에도 우리는 자네가 오감으로는 인지할 수 없다고 내민 예시를 이미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지각하고 있지. 그래프로든, 소리로든 말일세. 뇌가 존재하는 지 모르겠다고? 당장 이 교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개두술(craniotomy)을 실시해보는 건 어떤가? 유사 이래 개두술을 실시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뇌가 있었지. 그런데 이 교수만 그러한 '믿음'을 저버리고 뇌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의학적 발견이 아닐까?

학생은 사티레브의 논리에 못마땅함을 느꼈지만 곧장 반론할 논리를 찾을 수 없었다.

사티레브: 그래도 신이 사실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논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접근이라네. 불가지론(agnosticism)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인간으로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바로 그런 절대자 말일세. 그런데 말이지, 어떤 방법으로도 관측되지 않는 존재가 또 있다네.
학생: 사탄 말입니까?
사티레브: 아니, 바로 위대하고 성스러운 제우스님이시라네.

뜬금없이 튀어나온 제우스라는 말에 강의실이 술렁였다. 이를 지켜보던 교수는 재미있다는 듯 소리 없이 웃었지만 학생들 대다수는 갑자기 웅변조로 달라진 사티레브의 목소리와 논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 제우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말씀이십니까?
사티레브: 아니라네. 내가 가리키는 것은 그리스 성경의 제우스님이시라네. 자네에게는 그것이 신화일지도 모르지만, 유대민족이 신앙하던 구약과 신약 신화에 비하면 그리스 성경은 더욱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며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예수의 비장한 죽음도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생살이 뜯어먹히는 고통을 감내한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에 비할 바는 아니지. 여호와인지 야훼인지는 태초부터 존재하면서 인간 세상에 꼬장이란 꼬장은 다 부리지만, 제우스님은 타이탄들과의 싸움을 통해 몸소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낸 개척자시라네. 자네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우스님께서 이 세상에 내린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이지. 그것을 연 자네는 제우스님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네.
학생: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모두 집필자가 밝혀져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이것이 판도라의 상자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사티레브: 판도라의 상자임을 실사할 수 없다는 게 바로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라는 증거라네. 교묘한 함정은 토끼가 알아차릴 수 없게 짜여져 있는 법이지.
학생: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입니다.
사티레브: 반증할 수 있겠나? 나는 제우스님과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네. 자네가 그렇듯.

학생은 그 말을 반박하려다 자신이 판 논리의 함정에 빠졌음을 알고 그만두었다.

사티레브: 그리고 제우스님께서는 자네와 같은 기독교인들을 전부 타르타로스에 집어넣을 것이라 하시었네. 거짓된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말이지.
학생: 그런 말은 그리스 신화에 없을 텐데요.
사티레브: 말하지 않았나. 나와 제우스님은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고. 자네가 성령이라고 부르는,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나에게 진리를 속삭인다네. 다만 나에게 온 영적 존재는 자네의 그것과는 이름이 다르다네. 이것은 신령(the Theo Spirits)이라고 하지.
​ 교수: 그러한 영적 존재를 입증할 수 있겠나?
사티레브: 자기 머리에 뇌가 있는지도 장담 못하는 교수님이 오감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그리스령을 어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교수님은 엑스레이나 MRI로 머리를 찍어본다면 인화된 사진을 모셔놓고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실 겁니까?

교실에서 다시금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왔으나 교수가 그쪽을 바라보자 웃음소리가 그쳤다.

사티레브: 장난은 이만하지. 고작 제우스 하나에 쩔쩔매고 있으면서 오딘, 마르두크, 아후라 마즈다, 시바, 텡그리, 아마테라스, 보이지 않는 분홍 유니콘과 같이 널리고 널린 다른 신들은 어떻게 상대할 건가? 바로 이 차이가 교수의 두뇌에 대한 것과 같은 '믿음'과 그리스 성경에 대한 것과 같은 '신앙'이 갈라지는 지점일세. 자네가 스스로의 신앙으로 떠드는 그 시시한 논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 가능하고, 또한 실제로도 적용되어 왔지. 심지어 야훼를 뜯어먹는 전설의 펜리르(Fenrir)를 상상해보는 것도 가능하다네.
학생: 신성모독입니다!
사티레브: 이런, 이런. 신성모독이라는 말은 논리적 토론에 있어서 그닥 좋은 준거가 아니지. 게다가 자네와 같은 기독교인들이 불지옥이니 최후의 심판이니 하며 비신앙자들을 얼러대는 것과 비교하면야 충분히 신사적이라고 보는데. 기독교의 천국에서 야훼를 신앙하지 않은 자들의 자리가 있기는 하던가?


IV.

학생: 좋습니다. 제 논리가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제시한 논리 자체에서는 모순점을 찾지 못하신 것 같군요.

학생의 말에 사티레브는 박장대소했다.

사티레브: 지금 자네는 자신의 논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래, 그럼 자네가 언급한 걸 논의해보세. 자네는 진화를 부정하는 것 같던데, 아닌가?
학생: 전 하나님에 의한 창조를 믿고 있습니다. 교수님께 말씀드렸던 대로 그 누구도 진화하는 과정은 본 적이 없으며, 그것은 단지 이론에 불과합니다.
사티레브: 단지 이론이라고?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가 진화를 납득하지 못한 이유는 진화하는 과정이 관측되지 않았기 때문이겠군.
학생: 네, 그렇습니다.
사티레브: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 특히 화석이 있지 않은가?
학생: 화석은 진화의 전체 과정을 일괄적으로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미싱링크(Missing Link)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티레브는 다시금 파안대소했다. 교실의 몇몇 학생들도 입에 웃음을 머금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티레브: 자네는 내가 팔뚝만한 아기에서 시작해 지금과 같은 성인의 몸으로 자라났다고 생각하나?
학생: 네.
사티레브: 자네가 내 성장해온 과정을 눈으로 보았나?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학생: 사진이 있을 것 아닙니까?
사티레브: 아, 사진. 물론이라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졸업사진이 남아 있지. 하지만 나머지 사진들은 애석하게도 집에 화재가 일어나서 모두 타버리고 없다네. 그런데 내가 성장해온 과정을 입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 많은 화석도 부족하다는 자네가 고작 다섯 장의 사진으로 내가 성장해온 과정을 어찌 납득하겠나. 아무리 내 사진이 수천 장이 있더라도 자네에게는 한없이 부족하겠지. 미싱링크가 있으니까 말일세.
학생: 선배님에게 미싱링크가 있단 말입니까?
사티레브: 그렇네. 사실 난 태어나던 순간부터 제니퍼 로페즈의 몸으로 살았지. 그러다가 헤라 여신의 시샘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평범한 몸이 되어버렸다네. 그걸로도 모자라 헤라 여신은 내 졸업사진에 남은 제니퍼 로페즈의 모습들도 모두 보통 사람의 그것으로 바꿔버리고, 내 부모님의 기억까지도 조작해놓았지. 오직 나만이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니 도무지 만들에게 이를 납득시킬 도리가 없다네.

학생은 사티레브의 말장난이 자신의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사티레브: 난 지금 이곳에서 자네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해야 할 의무감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네. 자네의 논리대로라면 난 제우스를 숭배하며 번개 걱정 없이 비오는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남들에게 제니퍼 로페즈 시절을 자랑할 수 있지. 자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망상을 실재한다고 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버렸네.
학생: 하지만 제 논리의 부족함이 진화론의 타당함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티레브: 수천 개의 점을 구해놓고도 그래프 하나 못 그리는 순수한 학생이 어떻게 진화론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겠는가? 진화론의 이론은 이미 존재하던 종과 나중에 나타난 종 사이의 도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세. 장기적인 안목에서 개체와 개체 사이의 유전적 변이와 함께 그것의 환경 적응에 의한 선택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진화론의 요체이지. 진화론에서는 개체와 개체 사이의 유전적 변이가 항상 일어난다고 전제한다네. 예컨대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실러캔스(Coelacanth)조차도 유전자 차원에서 상당한 표준성이 유지되었을 뿐 미소한 수준의 변이는 분명히 존재했지. 따라서 자네가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나온 것이 진화론이라고 본 언설은 지금까지 최소 수백만 년 이상을 살아온 원숭이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자네가 재종형제의 배에서 태어났다는 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라네.

학생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학생: 그러면 열과 빛에 대한 제 의견에도 문제가 있습니까?
사티레브: 물론이네. 자네는 뜨거움이라는 감각적 인지를 열이라는 물리적 에너지의 개념과 교묘하게 혼동시켰네. 뜨거움과 차가움이란 인체가 설정하고 작동하는 온도를 기준으로 무엇가와 접촉했을 때 열에너지를 빼앗긴다면 차갑다고 인지하고, 그 반대라면 뜨겁다고 인지하는 것이라네. 예컨대 자네의 몸이 설정하고 작동하는 온도가 영상 200도라고 가정하면, 자네는 물이 기화하는 영상 100도를 충분히 차갑다고 느끼겠지. 애초에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단어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탐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사람이 에너지의 득실을 대상에 상상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가와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이라네.
학생: 그 비유는 교수님의 이분법적인 전제를 논박하기 위해 동원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티레브: 선한 신과 악한 신에 대한 것 말인가? 그래, 자네는 열과 차가움, 빛과 어둠의 예시를 들어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저 교수를 눌러보고자 했지. 시도는 신선했네만 선과 악은 분명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네. 선이 부재하면 악이 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걸세.
학생: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티레브: 애초에 이해를 했다면 그런 멍청한 발언은 꺼내지도 않았겠지. 한번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세. 자네가 빅맥을 먹고 싶은데 50센트가 부족하다고 해보지. 내가 자네에게 50센트를 준다면, 나는 선한가?
학생: 선합니다.
사티레브: 그럼 내가 자네에게 1센트를 준다면?
학생: 역시 선합니다.
사티레브: 내가 한 푼도 주지 않는다면?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학생: 그건…… 악하다고 하겠습니다.
사티레브: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던 것은 주고 싶었으나 이미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네가 빅맥이 아닌 다른 건강식을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네.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악하다는 말인가? 내가 1센트를 주었더라도 도리어 나머지 49센트가 모자라서 빅맥을 못 먹는다는 사실로 자네를 골탕먹이는 짓이었을 수도 있네.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선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자네에게 1센트를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 혹은 나아가 자네에게서 1센트를 빼앗는 것과 50센트를 빼앗는 것은 모두 공통적으로 선의 부재일 따름이므로 그 정도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말이 되는군. 자네는 교수를 가리켜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는 전제가 불합리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네가 더한 것이었다네.

몇몇 학생들은 사티레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V.

사티레브: 정리하지. 자네는 절대적인 척도와 상대적인 척도를 혼동시킴으로 선과 악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여, 앞으로 다시는 나와 볼 일 없을 저 교수를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다네. 또한 믿음의 영역을 신앙의 영역과 구분하지 않음으로 반증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믿음을 그렇지 않은 과학에 대한 믿음과 혼동시키는 부족한 이해를 보여주었지. 더욱이 이로 말미암아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일천한 것을 도리어 진화론의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몰아세워서 자신의 무지를 당연하다고 합리화하는 오만까지 저질렀다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티레브는 학생 앞으로 다가갔다. 학생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티레브: 거증책임은 자네에게 있다네. 신이 있는지 질문한 것은 교수라네. 그럼 자네는 교수가 무엇을 얼마나 아는가에 상관없이 신이 있다는 논리를 전개했어야 하네. 결국 자네가 말한 것 가운데 신이 있다는 증거 또는 논리를 내포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 않은가. 자네는 고작 교수의 말에 말도 안 되는 얼치기 논리로 답을 해놓고서 결국에는 모든 게 믿음의 탈을 쓴 신앙이라는 결론을 내렸지. 자네는 신이 있을 만한 이유가 있어서 신을 믿은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함을 밝힌 것이 되었네.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티레브: 알 만큼 아는 성인들을 가르친다는 천하의 교수가 저 정도인데, 이제 갓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얼마나 자네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겠는가. 허나 언제나 그러하듯 자네들의 말은 신이 존재한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네. 자, 이제 신이 존재한다는 근거를 어디서 끌어올 텐가?
학생: 서…… 성경이 있습니다.
사티레브: 자네, 아까 그리스 성경의 신령이 한 말을 잊었는가? 자네가 성경이라 한 유대민족의 신화는 전지전능하신 제우스님께서 자네들을 속이기 위해 마련한 판도라의 상자란 말일세. 반증할 수 있겠나?

사티레브는 껄껄 웃으며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참고] 사티레브 Satirev, 거꾸로 하면 Veritas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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