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말은 컴퓨터가 듣고 밤말은 엑스박스가 듣는 디지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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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아니…
낮말은 컴퓨터가 듣고 밤말은 엑스박스가 듣는 디지털 세상이다.
하긴 스마트폰은 하루 종일 엿들으니 기기를 특정할 이유도 없다.
개인 정보를 취합하는 기기나 소프트웨가 등장하면 거품 물고 사생활 보호 문제를 들이대기 일쑤다.
정말 사생활 침해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멀쩡히 법규를 준수하고도 차 사고를 당하거나 집단속 철처히 하고도 도둑 또는 강도가 들 확률이나 다를 게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편하게 살자고 들면 한 없이 편한 세상이다.
편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소비자도 조심해야 한다.
간단한 예가 바로 자동차다.
뭘 믿고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나들며 도로를 질주하는가? 한방에 세상 하직할 수 있는 속도로도 달릴 수 있는 건 은연 중에 주변 운전자들이 ‘어느 정도 이성적, 법적 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믿음이 깨질 때 큰 사고가 난다. 자동차 살 때 ‘고속도로 달리다 정신 나간 운전자, 음주운전자, 성질 더러운 운전자 탓에 사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식의 약관을 기대하는 소비자는 없다.
유독 디지털과 관련해 이런 우려가 큰 건 그만큼 낯설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흔히 생각하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세르반테스가 이 소설을 썼을 때만해도 신기술인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돈키호테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나간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과유불급이란 말은 세상만사, 세상만물에 적용된다. 책도 지나치게 읽으면 부작용이 없으리라 장담 못한다. 식음전폐하고 책만 읽다 죽을 수도 있다.
게임 얘기만 나오면 몇 날 며칠 게임만 하다 죽은 무직자나 어차피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게임광 비행청소년만 들먹이는 건 명백한 통계적 오류다. 어느 반이나 꼴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명문고에 가도 꼴찌는 있다. 일부러 정규분포 왼쪽 벼랑끝의 꼴찌만 지명해서 형편없는 학교라고 폄하하는 꼴이다.
오늘 삼성전자 스파이 TV 논란이 보도됐다.
삼성전자가 음성 인식 기능을 갖춘 스마트TV 주변에서 사적인 대화를 자제하라고 개인정보 보호 관련 약관 조항에 명시했다고 한다. 제3자에게 해당 정보가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찌보면 뜨끔할 소리지만, 음성 인식 데이터가 인터넷을 통해 분석 업체에 전달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호들갑 떨 이유가 없다. 아이폰 음성인식 기능인 쉬리(Sir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Cortana)도 음성 데이터를 서버로 전송해서 분석한다. 달랑 독립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면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 언뜻 봐도 전세계적으로 데이터를 취합해 분석하고 인식률을 개선하는 게 훨씬 낫다.
모든 음성 인식 기기는 제어가 가능하다. 차 사고가 두려우면 더 조심하면 된다. 그래도 두려우면 아예 운전을 안 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소비자의 선택이다.
‘약관 꼼꼼히 읽는 사람이 어디있느냐‘고 항변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소비자의 요구는 어차피 모두 만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무한대로 수렴한다.
통신사나 금융사가 전화를 걸어오면 호모사피엔스끼리 듣기 민망한 주의사항을 줄줄이 낭독하고 녹음하느라 시간낭비하게 되는 이유다. 하긴 그래도 딴죽 걸자고 마음 먹으면 지적질 당할 대목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고양이 목욕시키고 세탁기로 탈수했던 할머니가 LG를 상대로 승소한 세상이다. “애완동물을 탈수하지 마세요”란 주의사항을 약관에 넣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세탁기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세탁기에 넣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는 광범위한 표현을 쓴다해도 그 해석을 놓고 딴죽걸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다.
한 전문가 말마따나 그나마 삼성은 약관에라도 투명하게 명시했지만, 이런 언뜻 ‘당연한’ 주의 사항을 명시하지 않는 기기가 훨씬 많다.
자동차 약관 어디에도 ‘거리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주의 사항은 없다. 항공편 역시 ‘날벼락 맞거나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로 태평양 한복판에 떨어질 확률이 없지 않다’는 주의 사항은 없다. 있으면 대박인 거고…
우리가 그 정도는 당연히 말 안해도 이해하는 호모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디지털과 관련해서는 상식적인 얘기도 혓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되풀이 해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 호모사피엔스’가 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뜻일 게다.
우리 집에도 동작 인식, 음성 인식 기기가 수두룩하다. 내가 사용하는 모니터 3대는 죄다 웹캠이 내장돼 있다. 웹캠 역시 해킹을 통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기기다. 남의 컴퓨터 웹캠을 해킹할 정도로 뛰어난 해커가 잘 나가는 유명인이나 돈많은 누군가를 젖혀두고 굳이 날 해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도 찜찜하면 포스트잇이라도 붙여 가려두면 그만이다. 그 책임을 웹캠 제작사에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아끼는 디지털 장난감 중 하나인 엑스박스는 음성은 물론 동작까지 인식하는 키넥트란 장비가 연결돼 있다. 키넥트를 통해 게이머 영상과 함께 게임 화면을 곧바로 온 세상과 공유할 수도 있다. 참 재미난 세상이지만, 언뜻 생각해도 별의별 주의사항이 다 떠오른다. 아직까진 벌거 벗고 나체쇼를 벌이는 사용자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런 별의별 주의사항을 약관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머지는 상식적인 디지털 호모사피엔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늘 강조하듯 아웃라이어는 존재한다. 어차피 개인 정보를 악용하는 기업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세상을 만들지는 말자는 뜻일 뿐이다.
영어에 “to give the benefit of the doubt”라는 표현이 있다. 죄가 확연히 드러나기 전에는 일단 믿어주는 아량을 가리킨다.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하는 것(presume innocence until proven guilty)과 맥을 같이 한다. 한 전문가 지적마따나 음성 데이터를 활용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의 ‘선의’를 일단 믿고, 혹시 모를 ‘악의’가 입증되면 그때가서 따져도 늦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류는 그렇게 발전한다.
지레 겁먹고 곳곳에 장애물을 설치해두면 순조로운 발전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인 게임 산업 발전 못하는 것도 이런 지나친 노파심 탓이다.
인정하자.
편리한 디지털 라이프를 원하다면 그만큼 사생활을 일정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사생활을 철처히 보호하겠다면, 그만큼 일정부분 디지털적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1밀리미터도 어긋나지 않는 이치다.
인터넷에 의존하는 디지털 라이프는 사생활과 함수관계라는 뜻이다. 이 함수를 이해하고 파라메타를 조절하는 건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사용자의 책임이 훨씬 크다. 이런 역학관계를 이해 못한다면 어차피 슬기로운 디지털 라이프는 요원한 꿈일 테고.
삼성전자 ‘스파이TV’ 논란은 반대진영의 딴죽에 대한 삼성의 마케팅 실수 또는 미흡한 대응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애플빠라지만, 이런 문제로 삼성을 걸고 넘어진다면 세상에 자유로울 기술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BBC 기자는 장난스레 아마존 음성 인식 기기인 알렉사에 대고 아마존 개인정보 정책을 설명해 달라고 묻는다.
알렉사는 띨빵한 사지선다형 답을 선택한다.
아직 알렉사를 살 때는 아닌 듯하다. 적어도 쉬리는 대개 이런 되도 않는 질문을 하면 애플에 직접 알아보라고 답하곤 한다.
하지만 쉬리의 답변도 만족스럽지 않다.
저런 근본 없는 질문에 이런 돌직구가 가능한 기기가 있다면 냉큼 사고 싶다만…
[출처] http://www.creativeworksofknowledge.com/2015/02/10/digital-priv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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